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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칼럼

월간민화 편집국장 유정서
2016.06.29 14:11

절정에 선 우리 옛 가옥의 멋과 아름다움 ‘강릉 선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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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선교장

 

강릉 선교장

 

선교장은 조선시대 전통 사대부 가옥이 갖춰야 할 모든 시설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아흔 아홉 간 집이다. 바깥주인이 주로 머무는 사랑채와 안주인의 생활공간인 안채, 식객과 하인들의 거처인 행랑채, 그리고 별당과 제사시설인 사당, 온갖 초화와 연꽃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연지와 누각까지, 그야말로 이름처럼 장원(莊園)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거옥(巨屋)이다. 연꽃이 만개한 여름, 연꽃 속에서 솟아난 천상의 누각과도 같은 활래정의 풍경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장관이다.

 

강릉이 가진 옛날 이름 중에 ‘임영(臨瀛)’이란 게 있다. 글자 그대로 ‘바다에 임하여 있다’는 뜻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 바다에 임하여 있는 고장은 실로 한둘이 아닐 터인데 유독 강릉에만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강릉의 바다가 여느 고장의 바다와 뭔가 다른 구석이 있어서였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강릉의 바다는 남다른 구석이 있다. 여느 고장의 바다가 자연경관인 바다 그 자체만으로 거기 펼쳐져 있다면, 강릉의 바다는 사람의 숨결을 그득 안고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철썩이고 있다. 이를테면 강릉과 크고 작은 인연을 맺고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흔적, 그리고 강릉의 아름다운 바다를 동경한 숱한 시인묵객(詩人墨客)의 작품 속에서 강릉의 바다는 더욱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강릉의 바다는 이렇게 사람의 흔적과 이야기가 있어 아름답다.
경포 해변을 향해 가는 길과 그 언저리에서 우리는 율곡 이이와 사임당 신씨, 매월당 김시습, 그리고 교산 허균과 난설헌 허초희 남매의 체취와 만날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아름다운 경포 바다와 호수를 벗 삼아 지어진 수많은 가옥과 정자도 만난다. 그런 점에서 이들 모두가 강릉의 바다를 유난히 정겹고 아름답게 느껴지게 하고, 나아가 강릉을 새삼스레 ‘바다에 임하여 있는 고장’으로 만든 공로자들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강릉시 운정동, 경포 바다로 가는 길에 경포호수를 마주 보고 의젓하게 앉은 ‘고래등 같은’ 옛집 선교장은 특별히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필자가 선교장을 처음 만난 것은 20여 년 전, 한 여행 잡지의 햇병아리 기자로 일하던 1986년경의 가을이었다. 강릉의 명소를 이곳저곳 취재하던 중, 강릉시청 공보실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정말 우연히 선교장과 마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놀라운 만남의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앞쪽으로는 가을 경포호수의 정경이 아스라이 펼쳐지고, 뒤쪽으로는 나지막한 산언덕이 포근히 둘러싼 가운데 수묵화에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림 같은 노송군락이 기와지붕 뒤로 솟아있는 명당 터에 장중하면서도 산뜻하게 앉아있는 거대한 기와 가옥의 멋진 모습이란….
20여 년의 세월은 그 고즈넉하고 한적한 가옥을 늘상 사람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강릉의 으뜸가는 명소로 만들어 놓았지만, 잊을 수 없는 운치와 그림 같은 자태는 강산이 두어 번은 변했을 법한 지금까지 조금도 변함이 없다.

 

 

고래등 같이 크고, 동화처럼 아름다운 집

 

선교장은 조선 초기의 왕족 효령대군의 11세손으로 조선 후기에 살았던 선비 이내번(李乃蕃 1703∼1781)이 처음 지은 집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경포 바다 가까운 곳에 집 지을 터를 고르던 중 느닷없이 나타난 족제비 무리를 따라가다 발견했다는 명당 터에 첫 초석을 다진 후, 20세기 말까지 여러 차례의 증축을 거치며 장장 9대(代), 2백50여 년 이상을 이어온 유서 깊은 가옥이다.


총 대지는 3만 평을 넘고, 건물은 사랑채와 안채를 포함 10여 동이나 된다. 한옥의 규모를 말할 때 쓰는 단위인 ‘간’(間)으로 표현하면 선교장 가옥의 칸 수는 무려 1백20칸에 이른다. 흔히 가장 큰 민가를 표현할 때 쓰는 상징적인 용어가 ‘아흔 아홉 칸 집’인 것을 생각한다면 선교장이 얼마나 고래등 같은 집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규모에 걸맞게 선교장은 전통 사대부 가옥이 갖춰야 할 모든 시설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바깥주인이 주로 머무는 사랑채와 안주인의 생활공간인 안채, 식객과 하인들의 거처인 행랑채, 그리고 별당과 제사시설인 사당까지, 그야말로 이름처럼 장원(莊園)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거옥(巨屋)이다. 뿐만 아니라 대문 바깥으로는 운동장처럼 넓은 뜨락이 있고 뜨락 오른쪽으로는 온갖 초화와 연꽃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연지와 연지에 접해 있는 누각인 ‘활래정’이 있다. 연꽃이 만개한 여름, 연꽃 속에서 솟아난 천상의 누각과도 같은 활래정의 풍경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장관이다.


선교장은 여느 전통가옥에 비해 가로로 길게 이어진 외관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것은 행랑채가 무척이나 크다는 걸 의미하는데, 실제로 선교장의 행랑채는 무려 23칸이나 된다. 길게 이어진 행랑채가 주는 깊은 원근감도 선교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멋이다. 본시 행랑채는 작은 집의 경우 머슴이 기거하는 방이고 큰 집의 경우는 바깥주인의 손님이나 식객(食客)이 머무는 공간이다. 선교장의 행랑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손님이나 식객이 머물었던 공간이다. 행랑채가 이렇게 컸다는 것은 곧 선교장을 찾는 손님이나 식객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교장 주인의 인품과 사회적 명성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행랑채와 마주 보고 있는 사랑채인 ‘열화당’도 활래정과 함께 선교장에서 가장 이름 난 건물 중의 하나이다. ‘대화를 기뻐한다’는 뜻을 지닌 기막힌 당호(堂號)는 중국의 유명한 시인 도연명의 글 의 한 부분 “일가친척 간의 정겨운 대화를 기뻐하노라(悅親戚之情話)”에서 따온 것이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듬직한 규모에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격을 갖추고 온돌방과 툇마루 그리고 여름용 거실인 누마루가 함께 어우러진 ‘ㄱ’자 형의 기품 있는 건물이다. 그야말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함의 미학’이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하는, 사대부 가옥 사랑채의 백미라 할만한 건물이다.


건물 앞에는 동판으로 지붕을 엮어 햇빛을 가리는 차양 시설이 있다. 다른 건물들과는 양식이 판이한 이국적인 시설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격동의 구한말, 러시아공사관에서 선물로 지어주었다는 러시아식 건물이다.

 
 

연못 위에 뜬 누각, 활래정의 운치

 

한편 안채 건물은 1748년 이곳 배다리 마을에 처음 선교장이 자리 잡을 때, 지어진 건물로 오른쪽으로는 동별당, 왼쪽으로는 서별당과 이어져 있다. 안방과 건넌방이 대청으로 이어진 ㄷ자 형의 구조로 선교장의 거창한 규모에 비해 비교적 소박한 건물이다. 사랑채를 통하지 않고 밖에서 직접 드나들 수 있는 출입문이 별도로 나 있고, 사랑채와는 오른쪽으로 난 작은 쪽문을 통해 슬며시 드나들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쪽문을 통해 난 통로 또한 길고도 깊어 내외하는 아낙처럼 안채는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선교장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건물은 아마도 앞마당의 연지에 떠 있는 누각 ‘활래정’일 것이다. 사랑채인 열화당이 세워진 이듬해인 1816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건물로 마루와 온돌 시설을 아울러 갖춘 휴식공간이다. 남쪽으로 돌출된 누마루 부분이 흡사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는 듯 그지없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연못 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연지와 그 너머로 아스라이 눈에 들어차는 호수를 바라보며 마시는 차 맛은 얼마나 그윽했을까.


대부분의 옛 가옥이 단아하고 짜임새가 있으면 규모가 좀 작은 듯하고, 규모가 크면 뭔가 모르게 허전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선교장은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격조와 짜임새, 운치와 실용성을 두루 갖춘 아름다운 옛집이다.


옛날 강릉에 부임했던 부사는 임기를 마치고 가는 길에 대관령 고개에서 강릉을 바라보며 울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고장 떠나면 언제 다시 올까 싶어서였다. 강릉을 그렇게 아름답게 했던 것은 비단 바다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식객(食客)들로 붐볐을 옛 가옥 선교장도 그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글/사진 : 유정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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