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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칼럼

월간민화 편집국장 유정서
2014.05.06 09:50

수려한 경관, 자연과 하나 된 공간미의 절정 안동 병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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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병산서원

도산서원과 함께 안동을 대표하는 서원인 병산서원은 수려한 자연경관, 그리고 주변 풍경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탁월한 조형감각으로 건축이나 역사를 전공하는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전란 정국을 슬기롭게 이끈 난세의 정승 서애 류성룡을 배향하는 서원이기도 하다.

 
양반고을 안동을 대표하는 서원 건축

경상북도 안동은 ‘하회마을’이나 ‘탈춤’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 민속 문화의 소중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는 고장이지만, 정작 그 지방에 면면히 이어 내려온 문화적 전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고아하고 은일적인 선비문화, 혹은 양반문화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특별히 16세기경 중앙 정계에 본격적으로 등장, 조선 중기 사회 변화를 주도한 이른바 ‘사림(士林)세력’의 중추적 인적 자원이었던 ‘영남학파’의 본거지였다는 점에서 안동에 서린 양반문화의 전통은 조선조 선비문화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선비문화의 가장 중요한 발자취 중의 하나가 바로 전국 곳곳에 남아있는 수많은 서원(書院)들이다. 서원이란 한 마디로 사림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조선시대의 ‘고등사립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은 초등교육기관인 서당을 제외하고는 관학과 사학을 막론하고 교육과 제사의 기능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는데, 관학인 향교가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배향하고 있는 데 비해 서원은 해당 학통의 스승, 즉 선현(先賢)을 제사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후대로 갈수록 설립 초기의 건강한 이념과 기능을 잃어버리고 폐단이 심해지기는 했으나, 조선의 선비들이 학문과 인격을 도야하고 선현의 학통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무대였다는 점에서 서원을 빼놓고는 조선의 양반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안동에는 현존하는 서원 중 가장 유명한 두 곳의 서원이 있다. 그 하나가 영남사림의 태두인 퇴계 이황을 배향하는 도산서원이고, 다른 하나는 퇴계의 제자로서 퇴계 학맥의 ‘맏형’ 격인 서애 류성룡을 배향하는 병산서원이다.
이 두 서원은 학맥의 정통성뿐만 아니라, 서원 건축의 구조와 미학이라는 측면에서 뚜렷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그 중에서도 서애 류성룡을 배향하는 병산서원은 수려한 자연경관, 그리고 주변 풍경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탁월한 조형감각으로 건축이나 역사를 전공하는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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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의 완벽한 조화 이룬 만대루의 위용

병산서원이 자리 잡은 곳은 안동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약 70리 쯤 떨어진 풍천면 병산리, 낙동강 변에 펼쳐진 한적한 시골이다. 유명한 하회마을과는 약 6km 쯤 떨어져 있지만, 실은 광덕리에 있는 부용대와 함께 하회마을 권역에 속해 있는 명소이다.
하회마을 삼거리에서 하회마을로 향하는 오른쪽 길 대신 왼쪽 길을 택해 차를 달리면 말끔하게 포장된 하회마을 진입로와는 딴판으로 덜컹대고 먼지 이는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이 비포장도로는 2km 이상이나 좁게 이어지지만 왼쪽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낙동강 줄기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한마디로 절경이다. 강줄기가 마을을 휘돌아 흐를 즈음, 건너편 강안으로 흡사 병풍을 둘러친 듯 수직으로 깍아 지른 큰 산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이 우람한 산이 바로 병산이다.
병산서원은 바로 이 병산의 맞은편에 다소곳이 앉아있다. 뒤쪽으로는 적당히 나지막한 화산 줄기가 등을 받쳐주고 유장한 낙동강 줄기가 앞을 흐르는, 이른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국이다. 앞산이자 안산(案山)인 병산이 지나치게 높고 장엄해 시야가 멀리까지 이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산 아래를 크게 휘도는 강줄기와 그 앞으로 널찍하게 펼쳐진 흰 백사장으로 인해 뜻밖에 확 트인 듯한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서원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건물은 선비들이 강의를 듣고 수업을 하는 강당, 평소 공부하며 기거하는 재실, 그리고 선현에 제사를 지내는 사당 등으로 요약된다. 이들 건물은 보통 입구를 기점으로 학문과 관련된 시설들이 앞에 있고 사당이 뒤쪽으로 자리한 다음, 그 사이에 담장을 두어 교육시설과 제사시설을 구분해 주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배치방식을 이른바 ‘전학후묘(前學後廟)’ 방식이라 해서, 조선시대 서원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병산서원은 도산서원과 함께 이러한 배치양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서원이다. 정문이자 외삼문(外三門)인 ‘복례문’을 들어서면 누각인 ‘만대루’가 나오고 그 밑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정면에 강당인 ‘입교당’이 있다. 그 양쪽에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두 재실이 대칭으로 마주보고 있다.
그 뒤에는 내삼문(內三門)을 갖춘 사당인 존덕사가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 자리 잡고 있고 그 왼쪽에 서책의 인쇄 판본을 보관하는 ‘장판각’이 있다. 강당인 입교당과 사당인 존덕사가 정확히 일직선상에 있지 않다는 점이 다소의 변화라 할 만하지만 대체로 정형 양식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보편적인 형식을 따르면서도 주어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결과로 보인다.
병산서원의 건물 중에서 단연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것은 누각인 만대루이다. 사실 병산서원이 누리는 명성의 태반은 이 독특한 모양의 누각에 힘입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원 건축에서 누각은 거의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는 요소이지만, 병산서원의 누각은 그 형태가 매우 독특하다.
우선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정면이 이렇게 좌우로 넓게 펼쳐진 누각은 다른 곳에서는 거의 유례를 찾기 어렵다. 서원 전체의 규모에 비해서도 누각의 크기가 지나치게 크다. 그러나 만대루에 올라 멀리 앞을 바라보면 그 의도를 비로소 짐작할 수 있다. 눈에 가득 들어차는 병산이 바로 그 실마리다. 만대루의 정면은 병풍처럼 가로로 길게 펼쳐진 병산을 닮아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건물과 자연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다시 서원 안으로 들어가 입교당 마루에서 앞을 바라보면 만대루가 만든 직사각형의 공간은 흡사 카메라의 프레임처럼 병산과 그 앞을 흐르는 강줄기를 산뜻하게 잡아내고 있다. 참으로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심미안이 아닐 수 없다.

 
난세의 정승, 서애 류성룡의 체취 그대로

병산서원의 나머지 건물은 만대루의 위용과는 달리 작은 규모로 검소하게 지었다. 주 건물인 입교당과 만대루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가장 간단한 형태인 맞배지붕에 주초석이나 기둥들도 인공적으로 공들여 다듬은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특히 24개나 되는 만대루의 기둥은 자연석의 덤벙 주초 위에 휘고 구부러진 나무를 그대로 썼다.
병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주인공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전쟁 정국을 슬기롭게 이끈 조선 중기의 명신 서애 류성룡이다. 학맥으로 보면 학봉 김성일과 함께 퇴계학파의 좌장격인 인물이다. 서애를 배향하는 서원은 병산서원을 포함해 전국에 6곳이나 되지만 서애의 위패를 가장 먼저 모셨고 서애 하나만을 위해 지어진 곳이라는 점에서 서애의 이름을 대표하는 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는 고려 말부터 있었던 풍악서당이 병산으로 옮겨온 것이었는데, 서애가 사망한 후 그의 문인들과 유림들이 그 안에 사당인 ‘존덕사’를 세우면서 서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1863년 철종 연간에 뒤늦게 사액서원으로 결정되어 임금의 윤허까지 내려졌으나 철종이 곧 승하하는 바람에 실제 현판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대원군의 추상같은 서원 철폐령 속에서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다. 서애의 위패가 봉안된 존덕사는 서원 왼쪽 뒤켠에 자리 잡고 있다. 이례적으로 잘 다듬은 높은 초석 위에 당당한 솟을삼문을 정문으로 삼은 건물 일곽이 그것이다.
서원의 이곳저곳을 둘러본 다음 널찍한 만대루 마루 위에 서서 산 그림자 비친 낙동강 물줄기를 바라보면 그 옛날, 혹 이 자리에 서서 시심을 가다듬었을지도 모를 옛 선비의 청아한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글·사진 : 월간민화 유정서 편집국장 ( http://goo.gl/SEPLz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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