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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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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세연정

전라남도 해남과 완도군 일대에는 조선 중기의 대시인 고산 윤선도와 관련된 유명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유적이 완도군 보길도에 남아있는 세연정이다. 세연정 일대의 원림은 현재 남아있는 개인 별서 정원으로는 가장 크고도 뛰어난 수준의 것으로 조경에 대한 고산의 탁월한 안목과 미의식, 더 나아가 조선시대 조경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636년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세자(世子)의 사부까지 지낸 당대의 천재시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벼슬에서 쫓겨나 고향인 해남에 내려와 은인자중하며 울분을 삭이고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 50세, 관료로서는 원숙기에 접어든 지천(知天)의 나이였다.
비록 벼슬을 내놓은 처지였으나 오랑캐가 쳐들어와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다는 소식을 듣고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즉시 고향의 친족들과 가노(家奴)들로 무리를 규합해 서둘러 북쪽을 향해 배를 띄웠다. 임금이 강화도로 피난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산은 강화도로 향했다. 어찌나 서둘렀던지, 그들보다 먼저 떠난 우수한 싸움배보다도 먼저 강화도에 도착했다.
그러나 강화도마저도 이미 청나라 군대에게 함락된 뒤였다. 들리는 소리로는 임금의 수레가 요행히 적의 포위를 뚫고 영남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남쪽으로 다시 내려가면 어떻게든 임금의 일행과 만날 수 있으리라고 믿고 다시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렸다.
그러나 그가 들은 풍문은 말짱 헛소문이었다. 배가 해남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그는 임금이 진작 남한산성에서 나와 치욕스런 항복을 하고 한양으로 되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산의 낙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낙심한 그는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차라리 이 오욕의 땅을 떠나 어디 먼 섬으로 가자. 그렇게 제주도로 향했다. 아예 뭍으로 돌아오지 않고 거기서 여생을 보낼 작정이었다.
그러나 제주도로 가던 도중, 해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적한 섬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섬이 바로 보길도였다.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배를 대고 섬을 한 바퀴 둘러본 고산은, 그러나 이내 무릎을 쳤다. 봉우리는 수려하고 골짜기는 깊었다. 훗날 지엄한 임금의 묘터를 잡는 일에 깊숙이 참견할 정도로 풍수의 대가이기도 한 고산의 눈에 비친 보길도의 산하는 그야말로 나머지 삶을 유유자적하며 보내기에 충분한 천하의 명당이었던 것이다.
이래서 제주도로 가려던 마음을 고쳐먹고 보길도에 눌러앉기로 작정한 고산은 즉시 격자봉 밑 부용동에 터를 잡고 이 섬 일대를 자신의 환상적인 개인 원림(園林)으로 가꾸려는 원대한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된다. 이때가 병자호란 이듬해인 1637년이었다.

 
천하명당에 세운 시인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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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보길도의 원림을 완성한 시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보길도에 들어온 첫 해인 1637년에는 낙서재와 무민당 등 부용동 일대의 거처만을 짓고, 나머지 세연정 일대의 원림은 잠시 귀양살이를 마치고 다시 돌아온 1939년부터 몇 해에 걸쳐 꾸준히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들 보길도의 윤선도 관련 유적 중 가장 인상 깊은 하이라이트는 완형(完刑)이 가장 잘 남아있는 아름다운 인공 정원 세연정 원림이다. 실제로 세연정 일대의 원림은 현재 남아있는 개인의 별서 정원으로는 가장 크고도 뛰어난 수준의 것으로 조경에 대한 고산의 탁월한 안목과 미의식, 더 나아가 조선시대 조경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연정 유적은 낙서재에서 서쪽으로 약 5km 떨어진 보길면 부황리 일대에 펼쳐져 있다. 보길도의 주산인 격자봉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개울을 이뤄 흐르는 곳이다. 고산은 그 물을 ‘판석보’라는 작은 둑으로 막아 절로 연못을 이루게 하고 연못 안에는 크고 작은 기암괴석을 물에 잠기게 해 대단한 경관을 창조해 냈다. 고산은 이 연못을 ‘세연지(洗然池)’라 이름했다. 판석보에 가로막힌 세연지의 물은 다시 머리를 맞대고 있는 인공 연못 회수담으로 흘러들어 두 개의 연못을 이룬다.
회수담은 흐르는 물을 가두어 저절로 이루어진 세연지와는 달리 사람의 손으로 판 방형(方形)의 인공 연못으로 복판에는 둥그런 인공섬을 만들어 세연지에 잠긴 기암괴석과는 또 다른 멋을 느끼게 했다. 그리곤 이 두 연못 사이에 터를 닦아 사방이 확 트인 멋진 정자를 지어 올렸다. 이 정자가 바로 세연정이다.
본래 1989년 발굴조사 당시에는 연못의 흔적만 남아있었을 뿐, 세연정 건물은 유실되고 없었다. 지금의 세연정은 발굴 조사 결과를 토대로 1992년 겨울에 복원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에 팔작지붕을 한 전형적인 조선 중기의 정자 건물이다. 중앙에는 온돌방이 있고 사방에는 마루와 창호를 둘렀다. 최근의 건물이지만, 원림의 경관과 썩 어울리는 모양이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썰물은 물러가고 밀물이 밀려온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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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하나 된 한국 전통 원림의 금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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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연정 원림의 시설 중, 가장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물을 막아 연지를 만들기 위해 쌓은 인공 둑인 ‘판석보’이다. 이 판석보는 널찍한 판석을 벽처럼 양쪽에 세워 긴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는 강회를 섞은 흙을 채워 물이 새지 않게 한 다음, 역시 널찍한 판석으로 뚜껑을 만들어 덮은 인공 보(堡)이다. 보의 길이는 약 11m, 폭은 약 2.5m, 높이는 약 1m 정도이다. 이 ‘적당한 높이’의 판석보로 인해 세연지의 수위는 항상 일정하게 유지된다. 또한 여름 장마철 같은 수량이 많을 때는 물이 흘러넘쳐 폭포를 이루고, 수량이 적을 때는 운치 있는 돌다리가 되어 원림에 또 하나의 멋진 경관을 더해주고 있다. 이와 같은 인공 보는 우리나라 원림 조원에서 달리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인 시설로서 고산의 천재적인 조형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고산은 이렇게 구성한 원림 주변을 영산홍, 삼나무, 단풍나무 등의 온갖 초화와 수목으로 가득 채워 선경(仙境)을 연출했다. 세연정 일대는 지금도 동백과 철쭉을 비롯한 수많은 초화로 둘러싸여 있어 꽃피는 계절의 세연정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이렇듯 세연정 일대의 원림은 세심한 설계와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가득 찬 아름다운 공간이다.
고산은 보길도에 처음 원림을 개척한 1637년 이후, 1671년 8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곱 차례나 이곳을 드나들며 13년 동안 머물렀고 삶의 마지막 또한 이곳에서 장식했다. 보길도를 그만큼 사랑했던 것이다.
고산 윤선도가 우리 역사에 남긴 가장 빛나는 흔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학가로서의 업적이다. 특히 우리 시조문학 분야에 남긴 그의 족적은 단연 독보적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결코 시처럼 아름답고 평화롭지 않았다. 타협을 모르는 꼿꼿한 성품 탓에 오히려 늘 세상과 반목하며 고독한 삶을 살았다. 그런 그에게 자연은 세상과 불화한 시인이 상처난 마음을 부둥켜안고 되돌아오는 궁극적인 안식처였을 것이다. 남해의 그림 같은 섬 보길도에 손수 지은 낙원이 특히 그러했다. 그는 이곳에서 노닐며 더러는 격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더러는 절로 우러나는 감흥을 주옥같은 노래로 쏟아냈다. 그가 남긴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장편 시가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탄생시킨 것도 바로 이 보길도에서였다.
동백이 흐드러져 땅 위에 굴러 시들어가고, 진달래 철쭉이 만개한 어느 봄 날, 보길도를 찾아 세연정 정자에 앉아 세연지 맑은 물을 내려다 보라. 그 연못에 배를 띄우고 노래와 거문고 소리로 짐짓 번뇌를 삭였을 고집쟁이 노시인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글 : 월간민화 유정서 편집국장 ( http://goo.gl/0AMeD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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