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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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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임금 문무왕의 숨결, 동해에 잦아들다

대왕암-이견대-감은사지로 이어지는 동해구의 유적은 삼국통일의 영주 문무왕의 비원이 서린 유적이자 찬란한 신라 불교문화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유적이다. 끝내 남의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는 강력한 나라로 남기를 염원했던 문무왕의 위대한 의지와 종교의 힘까지 빌어 그 뜻을 길이 기리고자 했던 신라 왕실의 정성이야말로 천년을 이어온 신라 사직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동해의 입’에 남은 통일의 영주, 문무왕의 유적

대왕암

 

“경주에 가거들랑 모름지기 문무왕文武王의 유적을 찾으라-”
일제강점기 그 암흑기에 우리나라 미술사 연구의 첫 장을 연 선구적인 미술사학자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은 1940년 경 어떤 잡지에 쓴 글에서

독자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한 바 있다. 그가 이렇듯 간곡하게 찾아가 볼 것을 권유한 ‘문무왕의 유적’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감포 앞바다에 떠 있는

문무왕의 해중릉, 곧 ‘대왕암’을 말한다.
그가 석굴암이나 불국사 같은 유명한 유적들을 다 젖혀두고 먼저 대왕암을 찾으라고 강권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마도 그 하나는 단재 신채호나 백암 박은식 등의 민족사학자들이 광개토왕이나 대조영 같은 고대 정복 군주의 기상을 상기시켰던 것처럼

그 역시 그 암울한 시대에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강건한 정신을 나라 사람들이 본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문무왕의 유적이야말로 찬란했던 신라문화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학자로서의 견해를 밝힌 것이었을 터이다. 어떤 뜻에서였건 이 뛰어난 선각자의 권유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귀담아 들을 만한 훌륭한 충고이다.
옛 문헌 는 문무왕 해중릉이 있는 감포 앞바다 일대를 ‘동해구東海口’라는 다분히 상징적인 이름으로 적고 있다. 문자 그대로 ‘동해의 입’이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경주의 제일가는 진산鎭山인 토함산에서 흘러나온 물이 큰 내를 이루어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입구’라는 말이다.

이곳은 무엇보다도 신라의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는 지역이다. 대왕암의 주인공 문무왕을 비롯, 효성왕, 선덕왕 등 불심이 돈독했던 통일 왕국 임금들의

시신이 불교식으로 화장되어 뿌려진 묘역墓域으로, 이를테면 신라 왕실의 으뜸가는 성역聖域이었던 것이다.
대왕암이 내려다보이는 이견대 근처의 바닷가 언덕에는 이곳이 바로 옛 기록에 나오는 ‘동해구’ 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동해구를 노래한 우현 고유섭의

시비가 함께 서 있다. ‘동해구의 유적’이란 바로 이 성역을 중심으로 조성된 몇몇 중요한 유적을 일컫는다.

 
문무왕의 호국염원이 이룬 바다 속 무덤

감은사탑

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문무왕은, 그러나 통일이 된 후에도 큰 근심거리를 떠안고 있었다.

바로 시도 때도 없이 바닷가에 상륙해 노략질을 일삼고 수도 경주까지 위협하는 ‘왜구’의 침입이었다.

왜구를 완전히 진압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 문무왕은 죽은 후에라도 왜구를 진압하겠다고(欲鎭倭兵) 서원하고 자신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화장을 해 동해상의 큰 바위, 즉 지금의 대왕암에 장사를 지내라는 유언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동해를 그윽하게 굽어보는 용당리 언덕에

그 비원悲願을 이루기 위한 원찰願刹을 세우는 공사에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그 원찰이 다 완성되기도 전에 대왕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대왕이 승하하자 아들 신문왕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불교식으로 화장을 해서 그 유골을 대왕암에 장사지내고 미처 다 짓지 못한 원찰을 완성,

절의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대왕암이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언덕 위에 터를 고르고 대를 쌓아 이견대利見臺라고 이름 한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대왕암’, ‘이견대’, ‘감은사’의 세 곳이 바로 ‘동해구’를 대표하는 문무왕의 유적이다. 이들 유적은 모두 자신의 나라 신라가 영원히

강대한 나라로 남기를 바랐던 위대한 군주의 비원이 서린 뜻 깊은 흔적으로 훗날 선각자 고유섭이 ‘먼저 찾으라’고 간곡하게 권유한 바로 그 유적이기도 하다. 대왕암은 바로 이 동해구의 유적을 대표하는 유적이다.
대왕암이란 실은 감포 봉길리 해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바다에 산뜻하게 솟아올라 있는 자연 암석에 불과하다.

동해의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 바위가 중요한 유적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은 전적으로 문무왕의 시신을 이곳에 장사지냈다는

옛 기록 때문이다. 바위 가운데 뚜렷한 인공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문무왕의 신골身骨이 불교식 장법으로 안치되었다는 설과,

그저 바위 언저리에 뼛가루를 뿌린 정도였을 것이라는 설이 팽팽하게 대립되어왔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장사를 지냈든 이 바위가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문무왕의 넋이 잠든 의미 있는 흔적이라는 사실만큼은 틀림 없다.
한편 이 바다가 아련히 바라보이는 양북면 용당리 야산 자락에는 ‘욕진왜병欲鎭倭兵’이라는 대왕의 집요한 염원에 의해 건립된 원찰願刹 감은사의 옛터가

있다. 현재 이 절은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우람한 3층 탑 2기만 남고 나머지 전각은 모두 없어진 허허로운 절터로만 남아있다. 주춧돌만 남아있는 건물지 등으로 유추해 볼 때 감은사는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두개의 탑→법당→강당’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이른바 ‘2탑 1금당’식 가람배치 양식을 취하고 있다.

법당 앞에 2기의 탑을 마주보게 세우는 이 새로운 방식은 감은사에서 처음 시도되어 후에 불국사를 거쳐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가람배치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는 새로운 양식이었다.
다만 죽어서 용이 되었을 문무왕을 기리는 의미에서 특별한 시설을 마련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법당 밑으로 바닷물이 드나들도록 구멍을 내

용이 들어와 노닐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점은 현재 남아있는 독특한 형식의 유구들에서도 일부 확인이 되고 있다. 아울러 절의 입구였을 남문南門 앞쪽으로는 배를 대는 시설로 추측되는 흔적이 남아있어 아마도 그 옛날에는 동해의 물이 예까지 들어찼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절터에 남아있는 2기의 우람한 탑도 우리 고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적이다. 신라의 불탑은 중국의 벽돌탑을 석재로 모방한

이른바 ‘모전석탑模塼石塔’에서 출발, 통일 이후 목탑을 본 뜬 백제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신라만의 고유한 형식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감은사 터에 남아있는 이 탑들이 바로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최초의 탑이다. 이 탑에서 볼 수 있는 2층의 높직한 기단과 3층의 탑신,

그리고 날렵한 반전을 보여주고 있는 지붕돌과 5개의 층급으로 이루어진 계단 형태의 지붕받침 등은 신라 석탑의 가장 뚜렷한 특징으로 꼽히는 요소들이다.
감은사지탑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양식들이 가장 정제된 형식으로 반영되어 탄생한 걸작이 그 유명한 불국사의 석가탑이다. 이런 점에서 감은사지탑은

신라의 석탑, 나아가 한국 석탑의 진정한 출발점에 서 있는 기념비적인 유적인 것이다. 이같은 사실을 볼 때, 감은사는 통일의 영주 문무왕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새로운 설계와 새로운 공법을 과감하게 시도해 세운,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최신식 첨단 건축물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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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쟁쟁이는 외침,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

한편, 호국護國의 대룡大龍이 되어 더러 이 감은사에 들어와 노닐고자 했던 문무왕은 과연 소원대로 용이 되었을까?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현상까지

역사적 사실처럼 기록한 는 당연히 그러했다고 적고 있을뿐더러 ‘용을 목격한 장소見龍現形處’ 까지 밝히고 있다. 대왕암이 선명하게 내려다보이는

감포 바다 동쪽 언덕 위에 서 있는 이견대利見臺가 바로 그곳이다.
이견대는 그 유명한 신비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 전설의 무대로 널리 알려진 바로 그곳이다.
만파식적조萬波息笛條는 아들 신문왕이 신하들과 함께 용이 된 문무왕을 맞이하기 위해 이곳에 나왔다가 검은 용으로부터 신비한 대나무를 받아

만파식적을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기록에서 보듯, 이견대는 문무왕의 신골을 대왕암에 안치하고 나서 대왕암이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바다 기슭에 건립한 일종의 망배처望拜處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이견대 건물은 지난 1970년, 동해구 일대의 발굴조사 당시 건물의 흔적을 찾아 정자 형태의 건물로 새롭게 추정 복원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파도 철썩이고 물새가 날아드는 감포 바다의 시원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압권이다.
이처럼 대왕암-이견대-감은사지로 이어지는 동해구의 유적은 통일의 영주 문무왕의 비원이 서린 유적이자 찬란한 신라 불교문화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유적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테면 삼국통일의 과업을 이루고 나서도 계속해서 남의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는 강력한 나라로 남기를 염원했던 문무왕의 위대한 의지와 종교의 힘까지 빌어 그 뜻을 길이 기리고자 했던 신라 왕실의 정성이야말로 천년을 이어온 신라 사직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 침략기의 암담한 시절에 우리 고미술사 연구에 일생을 바쳤던 선각자 우현 고유섭이 ‘경주에 가면 우선 문무왕의 유적을 찾으라’고

간곡히 말했던 것은 결코 사사로운 권유가 아니다. 실로 가슴 뭉클한 절규인 것이다. 대왕암이 바라보이는 감포 바다, 그가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고

술회한 그 넓은 바닷 가에 서면 그런 느낌이 더하다.

 

글·사진 : 유정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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